유럽연합과 미국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 축소를 목표로 한 핵심 광물 협정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전기차 배터리와 재생에너지, 반도체 등 디지털 경제의 기반이 되는 광물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양측은 공급 리스크를 줄이고 상호 조달을 확대하는 틀을 서두르고 있다. 협상은 관세와 보조금 규정, 원산지 기준을 포함한 무역 이슈와 맞물려 진행돼 왔고,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촉발한 ‘우호국 중심’ 공급 재편이 유럽의 이해관계와 교차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한편 유럽은 핵심 원자재법(CRMA)을 통해 역내 채굴·정제·재활용 역량을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고, 미국은 동맹국과의 협정을 통해 배터리 공급망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묶는 전략을 강화해 왔다. 결국 이번 합의의 핵심은 단순한 자원 거래를 넘어 경제 안보와 공급망 통제력의 문제로 수렴한다는 점이다.
유럽연합 미국 핵심 광물 협정 협상 진전과 디지털 산업의 계산
양측이 추진하는 협정은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 등 전략 품목의 조달을 안정화하고, 관련 투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이 IRA를 통해 ‘미국 또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조달한 배터리 소재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면서, 유럽 기업들은 자사 생산물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공개적으로 제기해 왔다. 이 틈을 좁히기 위해 논의된 것이 ‘핵심 광물에 한정한 형태의 협정’으로, 유럽산 소재가 미국의 우대 요건에 준하는 방식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길을 트는 구상이다.
이 논의는 전기차와 클라우드 인프라까지 이어지는 디지털 경제의 원가 구조와 직결된다. 예컨대 유럽 배터리 밸류체인에 투자한 기업들은 원재료 가격 급등과 지정학 리스크 속에서 장기 공급 계약을 필요로 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국제 자원 외교 흐름을 둘러싼 각국의 행보가 주목받는 것도, 핵심 광물의 ‘정치화’가 더는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협상은 아직 기술적 쟁점이 남아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산업 보조금 경쟁을 관리하면서도 동맹 중심의 조달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중국 의존도 축소를 둘러싼 공급망 재편과 원산지 기준의 현실
중국은 다수 핵심 광물의 정제 및 가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 왔고, 이 구조는 배터리와 전자기기 가격 경쟁력에 직접 반영돼 왔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물류 병목, 에너지 가격 급등, 수출 통제 강화 같은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기업들은 ‘가장 싼 조달’보다 ‘끊기지 않는 조달’에 비용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 배터리 공장 투자 발표가 잇따르던 시기, 장기 공급 계약을 확보하지 못한 프로젝트들이 일정 조정에 들어가거나 재무 구조를 다시 짜는 사례가 산업계에서 회자됐다.
이번 의존도 축소 구상은 단순히 중국산을 배제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원산지 추적과 정제 단계의 투명성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에 가깝다. 무엇이 ‘동맹국산’으로 인정되는지, 정제·가공이 어느 단계에서 이뤄졌는지, 재활용 원료가 얼마나 포함됐는지 같은 기준이 무역 정책의 실무로 들어오면서, 공급망 관리가 회계·법무 영역까지 확장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이 과정에서 유럽은 CRMA를 통해 역내 생산 비중 목표를 제시하며 투자와 인허가 절차를 손보려 했고, 미국은 해외에서 조달한 원료라도 ‘신뢰 파트너’에서 가공된 경우를 우대하는 설계를 강화해 왔다. 결국 원산지 규정은 지정학의 언어이자, 기업 경쟁력의 숫자로 바뀌고 있다.
경제 안보와 핵심 광물 무역 규범이 바꾸는 투자 지도
핵심 광물은 이제 에너지 전환의 재료를 넘어 경제 안보의 핵심 변수로 다뤄진다. 유럽과 미국이 협정에 접근할수록, 광산 개발부터 정제 시설, 재활용 공정까지 ‘어디에 설비를 지을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달라진다. 그동안 유럽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의 인센티브 조건 때문에 공급망 설계를 재검토해 왔고, 이번 틀은 그 불확실성을 줄여 투자 판단을 앞당기는 효과를 노린다.
현장에서는 ‘광물 자원 확보’가 스타트업의 기술 로드맵과도 연결된다. 배터리 소재의 추적 시스템, 원산지 데이터 플랫폼, 공정 효율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기업들은 규제가 강화될수록 수요가 생긴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반대로 규정이 복잡해질수록 중소 제조사는 인증 비용과 행정 부담을 떠안게 될 수 있어, 산업 정책의 정교함이 관건이 된다. 이 때문에 업계는 협정이 관세나 쿼터의 문제를 넘어, 데이터 기반의 공급망 검증 체계를 어디까지 요구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협정이 실제로 어떤 광물과 어떤 공정을 포함하느냐’로 모인다. 포함 범위가 넓어질수록 효과는 커지지만, 이해관계 충돌도 커진다. 유럽과 미국이 각자의 산업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공통의 규범을 만들 수 있을지, 그리고 이 틀이 글로벌 공급망의 표준으로 번질지 여부가 다음 국면의 관전 포인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