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가 다음 대선을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유권자들의 시선은 점점 더 두 가지 쟁점에 고정되고 있다. 하나는 오랜 기간 정치 불신을 키워온 부패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으로 파고든 범죄 확산이라는 치안 문제다.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2025년 3월 25일(현지시간) 전국 TV 연설을 통해 2026년 4월 대선과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리마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강력 범죄가 늘고, 정부의 대응 능력에 대한 비판이 커지던 시점이었다. 여기에 과거 내전 시기의 인권 침해 사건을 둘러싼 사면 논란까지 겹치며, 이번 선거는 ‘누가 권력을 잡느냐’만이 아니라 국가가 법치와 책임을 어떻게 회복할지 묻는 시험대로 번지고 있다.
볼루아르테 정부가 공표한 2026년 4월 대선과 총선 일정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2026년 4월 투표에서 새 대통령과 함께 의회를 구성할 의원들을 선출한다고 밝혔다. AP/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는 130명의 하원의원과 60명의 상원의원을 뽑으며, 이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오랜만의 양원제 선거로 소개됐다.
대통령은 선거가 “민주적이고 깨끗하며 투명하고 질서정연하게” 치러질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본인이 출마할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임기는 2026년 7월 28일까지로, 선거 일정 발표는 정권 말기의 불안정과 거리의 불만을 관리해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일정 공표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행정 공지가 아니라, 잦은 정권 교체와 사회적 갈등 속에서 제도적 정상화를 약속하는 메시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약속의 설득력은 결국 부패 척결과 치안 회복이라는 현실 성적표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다음 국면의 관전 포인트다.
치안 문제 확산이 대선 판세를 흔드는 방식
최근 페루에서는 폭력 범죄 증가가 생활 불안을 넘어 정치 의제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뉴시스가 인용한 수치에 따르면 살인 사건 사망자는 2023년 1506명에서 2024년 2057명으로 늘었다. 통계의 변화는 체감 불안과 맞물려, 정부의 공권력 운용과 범죄 대응 역량을 직접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는 쿰비아 밴드 아르모니아 10의 리드 싱어 폴 플로레스(39) 피살이 거론됐다. 리마에서 공연을 마친 뒤 이동하던 투어 버스가 공격을 받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것으로 전해지며, 대중적 분노가 확산됐다.
이후 볼루아르테 정부는 3월 19일 수도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치안 지원을 위해 군 배치를 명령했다. 같은 날 야당 의원들은 내무장관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요구했고, 실제로 의회는 “폭력 범죄 증가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무장관 해임을 결정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거리의 불안이 곧바로 정권 책임론과 연결되는 구조가 굳어진 셈이며, 다음 대선의 ‘안전 공약’ 경쟁을 한층 거칠게 만들고 있다.
현장의 체감이 정치로 이어지는 흐름을 추적하려는 독자들이 늘면서, 관련 영상과 보도 아카이브도 주목된다.
부패 논란과 사면 결정이 불러온 정치 불신의 파장
부패 이슈는 한 번의 스캔들로 끝나지 않고, 제도와 사법 신뢰를 장기적으로 갉아먹는 변수로 작동해 왔다. 이런 가운데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사면’ 결정은 선거 국면에서 정치적 정당성 논쟁을 다시 키웠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페루 대통령실은 13일(현지시간) 볼루아르테 대통령이 법률상 권한에 따라 “역사적인 사면”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대상은 1980~2000년 무장조직 빛나는 길(Sendero Luminoso)에 맞선 정부군 작전에 투입됐던 군인과 경찰로 전해졌다. 당시 충돌로 약 7만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작전 과정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한 살인과 성폭력 등 인권 침해가 문제로 지적돼 왔다.
페루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2003년 보고서에서 5300명 이상의 여성이 성적·정신적 학대를 당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후 수사가 진행돼 전직 군인들이 강간 등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사법 절차가 이어졌지만, 이번 사면으로 상당수 사건의 처벌 또는 수사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미주기구(OAS) 산하 미주인권위원회(IACHR)는 2025년 6월 자료에서 “600건 이상의 재판 절차가 중단되거나 선고가 뒤집힐 수 있다”는 취지로 비판하며, 피해자의 사법 접근권 침해 가능성을 지적했다. 치안 강화와 공권력 존중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동시에 법치와 책임 원칙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가 더 날카로운 질문으로 되돌아오는 구조다.
정치적 불신은 지지율에서도 드러났다. 뉴시스는 2025년 3월 데이텀 인터내셔날 조사에서 응답자의 93%가 볼루아르테 대통령에게 반대했다고 전했고, 한국경제는 5월 조사에서 지지율이 2%까지 내려갔다고 보도했다. 치안과 사면 논란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사회의 규범을 어디에 둘 것인지 가늠하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논쟁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내전 시기와 인권 논쟁이 현대 페루 정치에 남긴 흔적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